화려하고 관능적인 분위기의 그림인 <키스>작품으로 유명한 구스타프 클림트는 원래 보수적인 미술 단체의 일원이었으나 기존의 낡고 판에 박힌 사상에 더 이상 의존하지 않고, 미술이 삶과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인간의 내면적인 의미를 미술을 통해 전달되길 원했습니다.
미술이 격동하던 19세기 말에 장식 회화가로 교육받았으나 곧 건축 장식 회화에서 탈피하여 금속 세공가 출신인 부친과 당시 유럽을 유행한 아르누보 양식의 영향을 받아 화려한 황금색과 장식적 형태를 사용해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또한 그는 그 당시 유행하던 프로이트 심리분석이론의 영향을 받아 심리적 내면세계를 작품에 드러내기 위해 노력했다.
젊은 시절에는 사실적인 회화에도 능하였으나 점점 더 평면적이지만 장식적이고 구성적인 방향으로 나아갔으며, 화풍뿐만 아니라 대학 회화라고 불리우는 일련의 문제작들에서 특유의 반항적/회의적 주제 의식을 보여줘 큰 비난과 함께 명성을 얻은 바 있으며, 그는 작품에는 에로티시즘과 강박증을 표현하였는데 아르누보 양식으로 지나치게 화려하게 치장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기도 했다.
20세기 들어서 모더니즘 계열의 미술이 빠르게 기존 회화 경향을 대체하였고, 클림트 이후의 작가들은 더 이상 클림트와 같은 그림을 그리지 않게 됩니다.
자신만의 독창적 화풍으로 확고한 위상을 구축했지만, 그 이전 전통과도 다르면서 훗날 미술과도 다른, 고립된 섬과 같은 위치에 있는 작가 클림트의 작품은 초기 표현주의로 대변되며 이후 에곤 쉴레 등의 신 표현주의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