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는 1만 3,500여 점의 그림과 700여 점의 조각품을 창작했습니다. 그의 작품 수를 전부 합치면 3만여점이 됩니다. 피카소 작품의 개수와 다양성 때문에 많은 예술사가들이 그의 작품들을 시기별로 분류하는 작업을 시도해왔지만 각 시기의 명칭을 정하고 시기를 몇 개로 나눌 것 인가를 놓고 계속 의견이 대립되고 있습니다.
1904년 피카소는 이른바 ‘장밋빛 시대’를 맞았습니다. 이 시기의 작품들 역시 피카소가 파리에 머물 때 그려졌지만, 오늘날 그것들은 그의 초기 작품들과는 달리 스페인 화풍이 아니라 프랑스 화풍에 가까운 것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이 2년의 기간 동안 피카소는 전과는 달리 붉은 색과 분홍 색을 많이 사용했습니다. 이러한 변화가 일어난 것은 그가 많은 그림들의 주제로 삼았던 페르낭드 올리비에와의 로맨스 때문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입니다.
피카소는 주로 프랑스에서 활동하였지만, 프랑스 정부에서 사회주의자로 분류되어 프랑스 시민권을 갖지는 못했습니다.
피카소는 스탈린을 익살스럽게 그린 그림이 스탈린에 대한 조롱으로 해석되어 1957년에 제명되기까지 프랑스 공산당원으로 활동한 사회주의자였으며, 한국 전쟁에서 벌어진 미국의 잔학행위에 대해서 비판하였습니다.
1951년 그는 <한국의 학살>을 발표하였고, 유엔과 미국의 한국전쟁의 개입을 반대하였습니다.
1973년 9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피카소는 미술 활동을 통하여 사회적 문제를 알리는데 노력하였습니다. 대표적으로 스페인 내전에서 게르니카 민간인들이 나치 독일 공군의 폭력으로 학살당한 게르니카 학살사건을 고발한 <게르니카>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