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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학예술가 칼럼] 예술, 보지 않고 보기(2025.08.04)

2025-08-19 10:09:53

지난 7월 14일, 영국 유력 일간지 가디언(The Guardian)은 영국 중부 도시 리즈(Leeds)에 위치한 헨리 무어 인스티튜트(Henry Moore Institute)에서 개최될 전시 《보이는 것 너머》(Beyond the Visual)를 소개했다.

헨리 무어 인스티튜트는 영국을 대표하는 현대 조각가 헨리 무어(Henry Moore, 1898–1986)와 가족이 1977년 설립한 헨리 무어 재단(Henry Moore Foundation) 산하의 비영리 기관이다. 이곳은 갤러리뿐만 아니라 조각 연구 도서관, 작가 논문 보관소 등을 갖추고 있다. 리즈는 무어가 조각가로서 첫발을 내디딘 도시이기도 하다.

오는 11월 28일부터 2026년 3월 8일까지 열리는 전시《보이는 것 너머》는 시각장애인과 저시력 예술가들이 직접 큐레이션에 참여하고, 이들의 경험과 관점을 반영해 기획된 최초의 촉각 조각 전시다. 이는 헨리 무어 인스티튜트가 지난 3년간 진행한 연구 프로그램의 결실로, 예술계에 여전히 깊이 뿌리내린 ‘시각 중심 편향’(ocularcentric bias)을 넘어서기 위한 실천적 시도다.

작품을 ‘보는’ 대신 ‘느끼는’ 방식으로 감상하는 것을 제안하는 이 전시는 궁극적으로 누구나 예술에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자 하는 제도적 변화를 촉구한다. 이런 점에서 《보이는 것 너머》는 향후 전 세계 미술관의 접근성 정책에 새로운 기준을 제시할 수 있는 상징적 이정표로 주목받고 있다.

실로 서구 예술사의 팔할을 지배했던 감각은 ‘시각’이었다. 미국의 역사학자 마틴 제이(Martin Jay)는 저서 『눈의 폄하: 20세기 프랑스 철학의 시각과 반시각』에서 고대 그리스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시각 중심주의(visualism)의 계보를 조망한다. 플라톤을 비롯한 고대 사상가들과 중세 기독교 세계관은 시각을 타 감각보다 우월한 위치에 두었고, 르네상스 시대에는 원근법 도입을 통해 시각적 경험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었다. 이후 데카르트는 시각의 특권을 철학적으로 정당화하며 근대 시각주의 패러다임을 공고히 했다.

하지만 제1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미술·문학·철학 분야에서는 이러한 시각 중심 체제에 대한 비판과 해체의 움직임이 본격화되었다. 특히 프랑스 현상학자 모리스 메를로퐁티(Maurice Merleau-Ponty)의 사상은 반(反)시각중심주의 예술 담론의 주요한 토대를 제공한다.

메를로퐁티는 인간이 세계와 관계 맺는 방식에서 ‘몸의 지각’을 중심에 놓는다. 그는 몸을 단순한 도구가 아닌 세계를 경험하는 주체로 보았다. 인간은 단지 ‘생각하는 존재’를 넘어 ‘살아 있고, 느끼며, 움직이는 존재’라는 자각이 그의 철학 핵심이다. 이때의 몸은 물리적 대상이 아니라 세계와 연결되는 유의미한 통로다.

그는 예술 또한 이러한 지각의 연장선에 놓인 행위로 이해했다. 예술은 이성적 분석을 넘어 감각을 통해 경험한 세계를 드러내는 방식이며, 예술가는 세상을 몸으로 느끼고 표현하는 ‘보는 자’이자 ‘보이게 하는 자’다.

메를로퐁티의 ‘몸으로 사유하는 예술’ 개념은 현대미술에서 사용되는 ‘조형 예술’(plastic arts) 개념과도 맞닿아 있다. 프랑스 미학자 다니엘 라구트(Daniel Lagoutte)는 『예술사란 무엇인가』에서 조형 예술을 “감각적이고, 물질적이며, 촉각과 시각에 관련되며, 지적으로 파악 가능한 것”이라 정의한다. 전통적으로 회화 중심이었던 ‘미술’(fine art)은 조형 예술로 확장되며 보다 다원적인 형식으로 발전해왔다. 나아가 현대미술은 ‘다감각적 예술’(multisensory art)이라는 이름 아래, 소리, 냄새, 시간, 움직임, 맛까지 감각의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이러한 다감각적 흐름은 다양한 예술 프로젝트를 통해 구체화되고 있다. 앞서 소개한 촉각 전시 《보이는 것 너머》 외에도, 크리스티나 쿠비쉬(Christina Kubisch)의 《전기적 걷기》(Electrical Walks, 2004-)는 관람객이 특수 헤드폰을 착용하고 도시의 전자파 소리를 들으며 주변을 청각적으로 체험하는 프로젝트다. 또한 시셀 톨라스(Sissel Tolaas)는 전시 《부패의 미학: 가을 센트럴파크 향 풍경》(The Beauty of Decay: SmellScape Central Park Autumn, 2015-2016)을 통해 뉴욕 센트럴파크의 냄새 샘플을 특수 페인트로 구현해 관람객이 벽을 누르면 향이 퍼지도록 구성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미각의 미감》(2016.12.5-2017.3.19) 전시는 도시의 음식 문화를 통해 삶과 예술, 공동체를 재발견하는 한편, 참여 프로그램을 통해 관람객에게 다감각적 체험을 제공했다.


시셀 톨라스의 후각 전시 《부패의 미학: 가을 센트럴파크의 향 풍경》을 체험하는 
관람객의 모습 (출처: Smithsonian Institution)

르네상스의 거장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는 “오감은 영혼을 세상과 잇는 다리”라 했고, 작가 로렌스 더렐(Lawrence Durrell)은 “오감 각각이 하나의 예술”이라 말했다. 형식과 내용이 점점 더 복잡하고 다층적으로 전개되는 현대미술에서, 인간의 몸과 감각은 예술을 온전히 느끼고 이해하기 위한 가장 근본적인 통로다. 오늘날의 예술은 눈으로 보고, 손끝으로 느끼며, 귀로 듣고, 코로 맡고, 혀끝으로 맛보는 다감각적 경험으로 확장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누구나 자기만의 방식으로 예술에 접근하고 향유할 수 있는 길을 넓혀준다. 예술은 언제나 새로운 문을 여는 일이었고, 이제 그 문은 우리의 오감을 통해 열리고 있다.

<필자 오혜재> 

한국의 독학 예술가(self-taught artist)인 오혜재는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영어영문학 학사(언론정보학 부전공)와 다문화·상호문화 협동과정 석사 학위를 받았다. 정규 미술교육 없이 2014년부터 일러스트레이션 작업을 시작했으며, 2019년 홍콩 아시아 컨템퍼러리 아트쇼를 통해 해외에 첫선을 보인 이후 국내외 다양한 예술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을 비롯해 홍콩, 싱가포르, 이탈리아, 독일 등 여러 국제 공모전에서 수상/선정된 바 있으며, 2024년에는 영국 문화예술 분야 글로벌 구인·구직 사이트 아트잡스(artjobs.com)에서 ‘2024년 2월 이달의 아티스트’로 선정되었다. 직장인이자 저술가로도 활동하는 오혜재는 2007년부터 유네스코한국위원회에서 근무하고 있다. 저서로는 『아르 브뤼와 아웃사이더 아트: 그렇게 외부자들은 예술가가 되었다』(2024), 『예술가의 성냥갑: 독학 예술가 오혜재 글모음』(2025) 등이 있으며, 예술 비평과 칼럼도 꾸준히 기고하고 있다. 국제 업무 경험과 학문적 배경을 바탕으로, 예술을 통해 다양한 문화 간 이해와 소통을 모색하고 있다. ▣

출처 : 컬처램프(https://www.culturelamp.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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