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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피사체에 집중한 화가, 인상주의의 기반이 되다 (2025.08.06)

2025-08-20 12:10:54

[arte] 이한빛의 아메리칸 아트 살롱

남자들의 세계, 인상주의 화가 구스타프 카유보트

시카고미술관(Art Institute Chicago)서 10월 5일까지
구스타프 카유보트 순회전 'Painting His World'
인상주의는 미술사에서 불멸의 주제죠. 동시대를 반영하는 컨템포러리도 흥미롭고, 고전주의 거장들의 작품도 멋지지만 결국 일반 관객은 물론 큐레이터나 비평가들 모두가 관심 있게 지켜보는 주제는 인상주의인 듯합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습니다만 (이전 칼럼에서도 살짝 언급했듯이) 저는 개인적으로 ‘창발’의 시점이라는 것이 많은 이들에게 어필한다고 생각합니다. 미술사에서도 그렇지만 과학기술의 발전과 도시화, 산업화가 동시에 일어나던 시기, 이전과 전혀 다른 세계가 시작된 것이니까요.

미국 3대 미술관으로 꼽히는 시카고미술관(Art Institute Chicago)은 인상주의 화가 구스타프 카유보트(Gustave Caillebotte, 1848~1894)의 순회전 ‘Painting His World’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모네나 드가, 세잔, 르누아르와 같은 다른 인상주의 화가들에 비하면 덜 익숙한 이름인데, 그의 작품 '파리의 거리, 비 오는 날(Paris Street, Rainy Day, 1877)'을 보면 아마 많은 분이 ‘아, 이 작가!’ 하실 겁니다. 비 오는 파리의 거리를 우산을 들고 걸어가는 사람들을 그린 대형 작품이죠. 시카고미술관 대표 소장품이기도 하고요.

Gustave Caillebotte, Paris Street, Rainy Day, 1877. The Art Institute of Chicago, Charles H. and Mary F. Worcester Collection.

전시는 약 120점의 회화, 드로잉, 사진 등을 통해 카유보트의 작품세계를 탐험합니다. 신기술과 신문물이 태동하는 19세기 후반의 파리는 인상파 화가들에겐 매력 넘치는 대상이었습니다. 인상주의 화가들은 주로 여성을 소재로 도시의 트렌드를 담아냈죠. 카유보트는 이와는 약간 다른 시각을 가졌던 모양입니다. 소개된 작품은 대부분 남성을 주인공으로 하고 그들의 영역을 담아냈습니다. 그래서 전시 제목도 ‘남자들의 세계를 그리다’인지 모르겠습니다. 전시는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서 2024년 10월 개막을 시작으로 로스앤젤레스 게티미술관에서 올해 2월부터 5월까지 관객을 만났고, 이제 시카고로 넘어온 참입니다.

금수저 변호사, 화가가 되다

한 신사가 뱃놀이를 하며 노를 젓고 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카유보트 가족의 여름 별장지인 예레강(Yerres River)입니다) 연미복 재킷은 벗어서 옆에 두었지만, 실크 모자는 그대로 쓰고 있네요. 목 끝까지 채운 스트라이프 셔츠와 타이, 조끼에서 ‘한 멋’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1870년대 프랑스 부르주아 남성들이 데이트 상대와 즐기곤 했던 뱃놀이 장면입니다. 흥미로운 건 시점입니다. 뱃놀이를 즐기는 두 명을 그려낸 것이 아니라, 노 젓는 신사만 그렸습니다. 맞은편에 앉은 사람의 시점에서 클로즈업 한 것 처럼요. 그래서 대상인 신사의 멋진 면만 도드라집니다. 카유보트의 ‘뱃놀이(Boating Party, 1877~1878)’입니다.

Gustave Caillebotte, Boating Party, 1877-1878. Musée d'Orsay, Paris, Purchased thanks to the exclusive patronage of LVMH, 
2022. Photo courtesy of GrandPalaisRmn (Musée d'Orsay) / Sophie Crépy.



평론가들은 섬세한 색채와 사실적 묘사, 관객이 노 젓는 사람과 함께 배에 탄 듯한 영화적 시점이 돋보이는 수작으로 평가합니다. 이 작품은 2020년 프랑스 국보로 지정됐고, 카유보트의 후손들이 소장하고 있던 작품을 LVMH가 4700만 달러에 사들여 국가에 기증했습니다. 덕분에 2023년 1월 오르세 미술관에서 일반에게 공개됐죠. 문화부 장관인 리마 압둘 말락은 “아름다운 승리”라고까지 극찬했습니다.

카유보트는 군수 방직공장 집안의 첫째 아들이었습니다. 부유한 집안의 장남으로, 옷이나 옷감에 대한 눈이 꽤 높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부르주아 남성들은 하나같이 잘 차려입고 있습니다. 친구들과 카드놀이를 하거나, 피아노를 치거나 방에 서서 창밖을 내다보는 남성들 모두 정장 차림입니다. 재킷을 벗더라도 조끼는 입었죠. 거리에 지나다니는 신사들은 모자를 꼭 썼고요. 댄디한 청년그룹입니다.

카유보트가 처음부터 화가의 길을 걸었던 것은 아닙니다. 처음엔 법대를 졸업해 22세엔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했습니다. 엔지니어로도 활동했고요. 졸업 후엔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 징집되어 1870~1871년 복무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그림에 관심을 가지다 1872년 에콜 데 보자르(École des Beaux-Arts)에 입학하죠.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화가 동료들(특히 인상주의 화가들)과의 교류가 시작되고, 전시에도 출품합니다.

그 시절, 프랑스의 남자들을 그리다

앞서 잠깐 설명했지만, 카유보트의 피사체는 다른 인상파 화가들과 차이를 보입니다. 일단 대상이 남성입니다. 미술사가 마리 베르호(Maire Berhaut)의 카탈로그 레조네에 따르면 남성을 그린 그림이 100점, 남녀를 같이 그린 그림이 17점, 여성만 그린 그림이 32점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남성을 정말 많이 그린 것이죠. 전시 서문에는 이처럼 남성 피사체에 집중하는 것이 상당히 이례적이라고 꼽습니다.

“많은 인상주의 화가에게 ‘현대 생활’은 여성 인물(부르주아나 매춘부, 배우, 세탁부, 극장 박스석에 앉은 여성이나 화장대 앞의 여성)과 남녀 간의 사회적 교류나 유혹의 장면(극장, 레스토랑, 카페 같은 상징적 장소에서 펼쳐지는)에 구현된다. 반면 카유보트는 현대 남성에 압도적으로 관심을 기울였으며 직업(바닥 긁기, 집 페인트칠, 군인 생활), 스포츠 활동(배 타기)과 남성 중심의 공공 공간에 초점을 맞추었다.”

Gustave Caillebotte, Floor Scrapers, 1875. Musée d'Orsay, Paris, Gift of the Caillebotte heirs through Auguste Renoir, 
1894. Photo courtesy of Musée d'Orsay, Dist. GrandPalaisRmn / Franck Raux.



덕분에 우리는 19세기 후반 프랑스 남성들의 생활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여성 피사체의 조연으로서가 아니라 주인공으로요. 카유보트는 남성들의 패션과 우정은 물론 부르주아 남성과 노동자 남성의 라이프스타일까지 담아냅니다.

피사체란 응시와 관찰의 대상입니다. 무엇을 그릴지 어떻게 그릴지 결정하는 ‘능동적 행동’을 하는 화가가 주도권을 쥐는 입장이라면, 반대로 대상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수동적인 상황에 놓입니다. 주로 남성 화가가 여성을 피사체로 놓고 그렸죠. 그러면서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도 그대로 담겼고요. 카유보트는 남성도 이런 방식으로 똑같이 바라봅니다. 가장 논란이 된 그림은 바로 남성 누드였습니다.

이번 전시에선 섹션이 하나 따로 마련되어 있습니다. 목욕을 막 마치고 뒤돌아서 몸을 닦는 남성(Man at His Bath, 1884), 목욕을 마치고 의자에 앉아 다리는 닦는 남성(Man Drying His Leg, 1884) 등이 걸렸는데 몸을 씻는다는 가장 사적인 행위를 관찰하며 그려냈습니다. 흥미로운 건 시선인데, 피사체들은 뒤돌아서 있거나 고개를 숙이고 있어 누군가 자신의 몸을 보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관객들은 마치 누군가의 일상을 훔쳐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죠.

Gustave Caillebotte. Man at His Bath, 1884. Museum of Fine Arts, Boston, Museum purchase with funds by exchange from an Anonymous gift, Bequest of William A. Coolige, Juliana Cheney Edwards Collection, and from the Charles H. Bayley Picture and Painting Fund, Mary S. and Edward J. Holmes Fund, Fanny P. Mason Fund in memory of Alice Thevin, Arthur Gordon Tompkins Fund, Gift of Mrs. Samuel Parkman Oliver - Eliza R. Oliver Fund, Sophie F. Friedman Fund, Robert M. Rosenberg Family Fund, and funds donated in honor of George T.M. Shackelford, Chair, Art of Europe, and Arthur K. Solomon Curator of Modern Art 1996–2011. Photo © 2025 Museum of Fine Arts, Boston.


Gustave Caillebotte. Man Drying His Leg, about 1884. Private collection. Photo by Lea Gryze, Berlin. © Private collection, Berlin, 2024.



카유보트는 독신으로 생을 마감합니다. 이런 여러 상황에 그의 성적 정체성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됐는데, 이에 대해선 판단할 수 있을 만한 확실한 증거는 없습니다. 안드레 돔브로스키와 요나단 D. 카츠는 ‘Painting Naked Men’이라는 평론에서 남성 누드 작품에 대해 “아직 이름 없는 욕망을 표현한 가능성”이라며 “성적 지향에 대한 명확한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이성애를 당연시해서는 안 되며, 성적 지향에 대한 질문도 현대의 시각으로 보는 것은 본질적으로 의미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노력파 거장, 큰형님 카유보트

카유보트는 1876년 제2회 인상주의 전시를 시작으로 1882년까지 총 5회에 걸쳐 다수의 작품을 출품합니다. 첫 회에 출품한 ‘창가의 젊은 남성’(Young Man at His Window, 1876)은 파리 아파트 창가에서 바깥을 내다보는 자신의 동생 르네 카유보트의 뒷모습을 그렸습니다. 2020년 프랑스 국보로 지정되기도 했죠. (현재는 게티미술관 소장입니다.)

Gustave Caillebotte. Young Man Playing Piano, 1876. Artizon Museum, Ishibashi Foundation, Tokyo.



전시에서 만난 카유보트의 저력은 수많은 연습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완성작을 만들기 전까지 스케치에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수정한 흔적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주먹을 쥐고 걸어가는 남성의 손을 자연스럽게 그리기 위해 여러 번 그린 것을 보면 노력파 거장이라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그 때문에 이렇게 사실적이면서도 자연스럽게 살아있는 듯한 분위기를 담아낼 수 있는 것 아닐까 싶지요.

카유보트는 다른 인상주의 화가들과도 친분이 깊습니다. 일례로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걸작으로 꼽히는 ‘선상 위의 오찬’(Le Déjeuner des canotiers, 1881)에도 등장하죠. 오른쪽 하단, 의자에 거꾸로 앉아 등을 보이고 있는 인물이 카유보트입니다. 이처럼 활발하게 활동한 작가인데도 그다지 잘 알려지지 않았고, 이제 재조명이 되는 이유는 그간 화가의 정체성보다 후원자이자 컬렉터로의 면모가 부각됐기 때문입니다. 그림을 팔아 생계를 유지할 필요가 없었기에, 카유보트는 1882년 인상주의 전시를 마지막으로 이후엔 파리 교외의 프티젠빌리에(Petit-Gennevilliers)로 거처를 옮겨, 정원 가꾸기와 요트 경주용 배 만들기에 몰두했습니다.

Gustave Caillebotte. Self-Portrait, about 1892. Musée d'Orsay, Paris, acquired with funds from an anonymous Canadian donation, 
1971. Photo courtesy of GrandPalaisRmn (musée d'Orsay) / Martine Beck-Coppola.



그러나 꾸준히 동료 작가들을 지원했습니다. 컬렉션을 통해서요. 인상파 전시회에 자금을 지원한 것은 물론 클로드 모네, 오귀스트 르누아르, 카미유 피사로의 작품을 구매했습니다. 모네에겐 작업실 임대료를 대주기도 했고요. 이렇게 컬렉션한 작품은 카유보트의 유언에 따라 국가에 기증됩니다. 현재는 오르세미술관의 인상주의 컬렉션의 골자를 이루고 있죠. 인상주의가 꽃필 수 있었던 기반은 바로 카유보트에게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격동의 시기, 예술의 힘에 눈을 뜨고 실제로도 재능 넘치는 예술가였던 카유보트. 동시에 남과 다른 시각을 늘 유지했던 작가. 컬렉터이자 후원가로 뜻을 같이하는 동료들을 지원할 수 있었던 그의 일생은 무척이나 흥미롭습니다. 열린 교과서 같은 인상주의라고 하지만 잘 짜인 기획전으로 만나는 인상주의는 늘 새롭습니다. 전시는 10월 5일까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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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빛 칼럼니스트

출처: 아르떼(https://www.arte.co.kr/stage/theme/9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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